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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유혹,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루카 4,1-13) 본문
사순 제1주일(다해), 2013-02-17
1독서 : 신명 26,4-10 2독서 : 로마 10,8-13 복음 : 루카 4,1-13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 눈을 밝혀주시어 주님께 합당한 것을 알아보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성령으로 가득 찬 예수님의 세례 사건 이후에 그분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가셔서 40일간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루카는 예수님 족보에서 아담을 하느님의 아들(루카 3,38)로 지칭합니다. 또 오늘 복음에서는 광야라는 단어를 통해 광야에서 시험받은 하느님의 자녀 이스라엘을 연상시키는 점에서, 예수님의 유혹 사건은 단지 그분 개인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으며 인류 전체 특히 지상에서 순례 중인 하느님 자녀들을 대표한 체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성령에 이끌려 이뤄진 것이란 점은 하느님 자녀들이 받는 유혹과 시련이 하느님 계획 안에 들어 있다는 그분의 오묘한 신비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9,23)입니다.
예수님은 40일에 걸친 악마와의 싸움에서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십니다. 첫 번째 유혹에서 악마는 시장하신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요구하는데 그분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허기를 심하게 느끼셨을 테지만 그 옛날 반항하던 이스라엘처럼 육체적 필요를 존재 중심에 놓지 않고 섭리로 돌보시는 하느님을 첫자리에 두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는 것을 우선하시며 그분 섭리에 그 필요를 내맡기는 모범을 보이십니다.(12,31)
그리고 이 첫 번째 유혹에서 악마가 내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전제 조건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전제는 그분이 하느님 아들임을 거부하는 불신을 은근히 보여주는 말로서 그의 요구와 더불어 마치 능력을 보여주어야 믿겠다는 태도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신의 태도, 징표를 보아야 믿겠다는 자세를 복음서 내내 볼 수 있고 특별히 예수님의 수난 때 그 메아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마태 27,42; 마르 15,32; 루카 23,35.37.39)
그러나 예수님은 이 불신의 자세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더군다나 이 거부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당신의 정체성이 당신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요 또 그 능력의 드러남으로 확인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신 존재에 달린 것이요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혹에 실패한 악마는 이제 세계 모든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자신을 경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그는 슬쩍 첫 번째 유혹의 그 전제를 생략하여 마치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 하느님 아들에게 어울릴 권세와 영광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대답하시며 당신 정체성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십니다. 아들 신분의 핵심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루카 복음사가는 이 경배 προσκυνέω와 섬김 λατρεύω이란 단어를 거의 배타적으로 하느님과 예수님을 대상으로 쓰고 있는데 그중 베드로를 모시면서 하느님께 경배하듯 예의를 갖춘 코르넬리우스의 태도(사도 10,25)에 대해 베드로가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일어나십시오. 나도 사람입니다.” 참된 하느님 자녀들은 자신을 찾거나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만을 찾으며 예수님은 그 첫 번째 모범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고 영광을 하느님께만 돌리십니다.
마지막으로 악마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하느님의 보호와 연결시켜 유혹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면 그분께서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고 구해주실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성경으로 악마에게 논박하셨기에 그도 성경을 근거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음의 표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악마의 요구를 그분의 생애 특히 십자가 죽음의 순간에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 27,43) 그리고 그분 스스로도 고통 중에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셨는데(마태 27,46; 마르 15,34) 아마 가장 처절하고 힘든 유혹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분은 징표를 요구함이 없이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하느님 자녀들은 죽음을 통해 그들의 생명을 보장받기 때문에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거부하는 현세적 생명 보호의 사고방식을 사탄의 것이라고 하시며 과감히 물리치십니다.(마르 8,33 참조)
이렇게 악마는 모든 종류의 유혹에서 실패하고 예수님에게서 떠나가지만 다음 기회를 노립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시련과 유혹으로 점철되어 있고(루카 22,28) 특히 수난의 때에 그러하지만(루카 22,3.31.53) 그분은 하느님께 충실한 아들로 남으셨습니다.
묵상 (Meditatio)
내 육신의 욕구와 필요 그리고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는 각각 내게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요? 능력지상주의인 세상의 가치 속에서 나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내 정체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존재 가치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지요? 나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명예나 직위, 이익보다 우선시하고 있고 이것들을 하느님 사랑이라는 목적에 방향 짓고 있는지요? 나는 고통과 시련 중에서도 하느님 사랑을 굳게 신뢰하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수 있는지요?
기도 (Oratio)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아, 악을 미워하여라. 그분께서 당신께 충실한 이들의 목숨을 지키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출해 주신다.(시편 97,10)
[야곱의 우물, 2013년 2월호]
김태훈 수사(성바오로수도회)
* 김태훈 - 성바오로수도회 수사 신부. 서울가톨릭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했다.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 학위를,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요한 2,1-12에서의 예수의 어머니: 주석학적, 신학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수도회에서 수련장으로 수련 형제들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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